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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교 전 통상교섭본부장의 관세협상 제언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5일 인터뷰에서 “협상 본게임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지난달 31일 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이 타결됐다. 한국은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가로 1년 정부 예산의 80% 수준에 달하는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미국에 약속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큰불만 껐을 뿐”이라며 트럼프 정부로부터 ‘추가 청구서’가 날아들 것이라고 경고했다.다음증시
“본게임은 이제부터다. 최대한 충격을 줄이면서 약속을 이행하고, 산업별로 구체적인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지난 정부에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내며 미국과의 초기 관세협상을 진두지휘했다. 정 교수를 지난 5일 오후 서울 도산대로 HLL 중앙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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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됐는데. A : “통상 협상이란 게 양복을 입고 테이블 위에 앉은 모습만 보면 우아하지만, 현실은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미국 측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침이나 의중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면서 상대를 위축되게 만든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상당한 불이익을 받게 될 거라는 압박 속에서도 우리의 주장을 관철해야 하는 고난도의CS주식
작업이다. 일단 25% 관세를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애초에 관세율을 내리는 대신 무언가를 내놔야 하는 협상이었기 때문에 손해가 없을 순 없다.”
■ 양복 입은 전쟁터, 통상협상
「 3500억 달러 투자, 천문학적 규모
트럼프 또다른 품목도 인질 삼을 것 조선업 협력도 디테일 설계에 달려 돈모으는방법
」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다섯째)이 구윤철 경제부총리 등 한국 협상단과 백악관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사진 백악관]


Q :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원래 0%였던 관세가 15%가증권리포트
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은 관세를 안 내고 우리는 내는데 왜 상호관세인가. A : “맞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방 관세다. 자국의 무역적자가 많은 건 상대국의 비관세 장벽 때문이라는 게 미국의 기본적인 인식이다. 그래서 트럼프 정부가 기존에 없던 관세를 만들어냈고, 힘의 논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일단 일본이나 유럽연합(EU) 등 경쟁국이 15%까지 관세율을 낮춘 시점에 한국도 최소한 그 정도는 따라가야 했다. 미국은 국가별로 관세율을 낮춰주는 대신 무언가를 얻어내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Q : 남은 트럼프 임기 동안 내내 협상해야 할 거란 시각도 있다. A : “당연한 얘기다. 이제 첫 관문을 통과했을 뿐 본게임은 이제부터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의 뒤끝을 예상할 수 없다. 새로운 관세든, 또 추가 관세든 얼마든지 또 때릴 수 있다. 당장 반도체와 의약품 품목 관세를 언급하지 않았나. 남은 품목을 사실상 인질로 잡아두고 있는 셈이다. 미온적이거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면 더 세게 나올 것이다. 최근 스위스에 대한 압박을 보면 된다.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다. 한국 입장에선 최대한 충격을 줄이면서, 성의 있게 약속을 이행하는 수밖에 없다. 전체 국익을 최상단에 두고 산업별로 구체적인 대응 전략을 짜야 한다.”
Q :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어떻게 보나. A : “사실 적정한지, 아닌지의 기준을 찾기도 힘들 만큼 천문학적인 숫자다. 정부는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5500억 달러 투자 펀드를 약속한 일본보다 나은 협상을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역적자 문제를 어떻게 단년으로만 따지는지 의문이다. 최근 10년간 대미 무역흑자 규모를 따지면 한국이 일본의 약 절반이다. 일본보다 나은 조건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Q : 미국 측에선 투자에 따른 이익 90%가 미국에 귀속될 거라고 얘기하는데. A : “정부에선 재투자 차원의 언급이라고 주장하지만 어떻게 해석하든 큰 문제다. 이번 투자로 한국 기업도 상당한 부담을 안을 텐데 기업이 그 과실을 국내로 가지고 오거나, 주주에게 환원하는 데 제약이 있다면 이건 지속 가능하지 않은 협정이다. 백악관 대변인은 투자 수익이 미국 정부에 귀속되고, 부채 상환 등에 쓰일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양측이 조율해 나가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갈등이 있을 것이다.”
Q : 관세 부과로 자동차 업계의 우려가 크다. A : “예전 한·미 FTA를 체결할 때 정부는 자동차 관세 2.5% 면제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미국에서 팔리는 국산 차 가격이 5만 달러라면 수출할 때 관세가 없어지면서 대략 100만원 정도 가격 경쟁력이 생긴다는 설명이었다. 어느 정도 주효했다. 현대·기아차의 품질도 향상됐지만, 관세 면제는 국산 차가 미국에서 점유율을 늘리는 원동력 중 하나였다. 그런데 협상으로 그 장점은 사라지고, 유럽이나 일본 차와 같은 수준에서 경쟁하게 됐다. 많아야 7~8% 수준인 영업이익률을 고려하면 15% 관세는 사실 말이 안 된다. 현대·기아차의 입장에선 미국 생산을 늘릴 수밖에 없다.”
Q : 한·미 FTA는 사실상 사문화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A : “지난해 기준 대미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자동차뿐 아니라 철강도 50%라는 엄청난 관세를 매긴다. 0%였던 구리도 50%가 됐다. 다른 품목별 관세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간 누렸던 한·미 FTA의 혜택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는 뜻이다. 어떤 형태로든 협정에 관한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이대로 둘 수는 없다.”
Q : 미국산 농산물 수입은 막았다. A : “잘했다, 못 했다를 판단하긴 쉽지 않다. 관세를 15%로 낮추고 쌀과 소고기 시장을 지키는 대신 3500억 달러의 투자를 약속했다. 농산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다른 산업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손댈 수 없는 성역인지는 의문이 있다. 정말 국익을 위한 것인지 성찰이 필요하다.”
Q : 조선업 협력 확대는 지난 4월 첫 ‘2+2 한·미 협의’ 때도 논의됐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거북선 문양이 새겨진 기념주화를 선물하기도 했는데. A : “미국과 초기 협상을 할 때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조선업 관련 제안을 했더니 첫 번째 반응은 ‘그건 한국 기업에 좋은 일 아니냐’는 거였다. 협력하더라도 각종 견제를 뚫어내며 진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배를 만드는 거니 미국산 철강을 쓰라고 할 테고, 기술자 수급이나 항만 근로자 노조 문제 등 각론에 들어가면 복잡한 문제가 많다. 조선 분야 협력이 트럼프의 눈길을 사로잡는 ‘굿 아이디어’ 역할을 했지만 중요한 건 세부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다.”
Q : 낙후된 산업 기반 재건에 역할을 하면 한국 조선업체에도 기회 아닌가. A : “미국에서 건조한 상선만 미국 항구에 입출항하도록 하는 ‘존스법’만 봐도 알지만, 규제가 제1차 세계대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세계 최강 조선국이던 미국이 빠르게 경쟁력을 잃은 원인이다. 현 단계에서 국가 차원의 정밀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장 시급한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분야를 제외하면 당장 한국 기업이 들어가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뚜렷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1500억 달러라는 엄청난 재원을 한 분야에 집어넣겠다고 하니 걱정이 있는 건 당연하다.”
Q : 과도한 미국 투자로 기업의 국내 투자가 줄어들 거란 우려도 있다. A : “가뜩이나 주력산업 공동화 우려가 큰 상황이다. 제대로 된 산업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 기업의 국내 투자가 줄어들 상황이라고 하면 그만큼 해외에서 한국에 많이 투자하도록 대안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그러려면 한국의 규제나 정책 방향이 어느 정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해외 투자자의 시각에서 보면 상법 개정이나 노란봉투법 등은 당연히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규제를 풀고 지원하겠다면서 오늘, 내일 말이 다르면 안 된다. 불확실성이 큰데 어느 해외 투자자가 10~20년짜리 투자 결정을 하겠나.”
Q : 이달 말 한·미 정상이 처음 만난다. A : “통상 관련 의제가 아주 중요하게 논의될 것이다. 미국이 이번 협상에 담지 못했던 이슈를 꺼낼 가능성도 크다. 예컨대 구글 지도 문제나 국내 온라인플랫폼법 제정 움직임 등은 미국이 강하게 요구할 수 있다. 경제 안보도 반드시 얘기가 나올 거다. 한국보다 앞서 미국과 관세 협상을 마무리한 나라들의 ‘팩트시트’(합의의 세부 내용을 설명하는 자료)엔 어김없이 경제 안보 관련 내용이 들어가 있다.”
Q :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 A : “핵심은 중국 견제다. 미국의 대중국 전략은 전략적 디커플링(탈동조화)이다. 필수품 등은 교역하더라도 미국이 중시하는 산업은 중국과의 거래를 단절하는 방식이다. 수출 통제부터 기술 교류 제한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트럼프 정부 들어 중국의 우회수출 전략을 강력히 차단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통상질서 요동, 한국은 어떻게
「 국내 산업 공동화 우려, 규제 풀어야
‘중국 견제’가 한·미 정상회담 의제 한국, 환태평양경제협정도 동참을 」
Q : 한국엔 어떤 요구를 할까. A : “미국 고위 관계자를 만나보면 한국 연구자들이 중국과 교류하는 걸 굉장히 경계한다. 특히 전략기술 분야의 정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이 중국과 접촉하는 것 자체를 불법으로 본다. 일본은 대학교수나 연구원들이 중국에 갈 때 누구를 만나는지 신고하고, 필요하면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다. 한국은 이런 제도가 없다. 심지어 인재의 중국 유출도 심각하다. 미국은 계속해서 한국의 의지를 확인하려 할 거다.”
Q : 세계 통상 질서가 요동친다.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A : “20년 넘게 해 온 얘기지만 근본적으로는 미·중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서 시장을 다변화하고, 거기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미국이 스스로 그토록 칭송하던 규칙 기반 무역질서를 완전히 깨부숴버린 건 확실해졌다. 새로운 무역체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고, 그런 측면에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당장 EU도 CPTPP 가입을 검토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빨리 동참해 주도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